읽히는 일 없이 쌓여만가는 책들에 압박을 느끼고 조금씩 조금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읽으려니까 뭐부터 박살을 내야할까 막막했는데 결국 손에 집은게 이 책이었다. 잡은 이유는...굳이 이야기하면 제목이 눈에 띄여서 ㅡㅡ);;; (애초에 구입을 한 이유도 제목에 의한 충동구매였다) 근무시간 중에 짬짬히 1권을 처리하고 집에서 찜질하면서 2권을 처리.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쓰려고 하는 지금...일단 한마디 하고 시작하자.
쓰바 제대로 낚였다 ㅡㅡ)+
소년에 대한 이상성욕을 가진 ‘알프레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책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독자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는 범인을 쫒아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결국엔 범인을 밝히는 일반적인 스릴러의 틀에서 벗어난 기법이다. 이것의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르문학에 있어서 정형화된 틀이라는 것은 제약이라고 느껴지기 쉽상이나 사실은 가장 효율적인 ‘틀’이다. 역사가 깊은 장르일수록 이 틀은 정밀하고 견고해지며 이것이 지나치면 이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마녀사냥’ 을 당하는 일이 종종 생기기에 제약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란 것이다. 즉, 틀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다루기 어려운 ‘도구’ 를 선택했다는 것이며, 이 경우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다. 대박이냐, 쪽박이냐. 그리고 작품이 어느쪽으로 평가받느냐는 오로지 작가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동수집가’ 는 시도는 좋았으나 그를 뒷받침하는 작가의 역량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범인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생기는 공백을 매꾸기 위한 요소로 범인의 시점에서 그리는 심리묘사등은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연쇄살인범의 심리에 대한 공부부족으로 인한 ‘연쇄살인범의 미완’ 은 오히려 그 부족한 점을 눈에 띄게만 만들었으며 연쇄살인범을 완성시키는 요소의 부족은 필연적으로 그 외 캐릭터들에 대한 불필요한 상세묘사에 작가가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아동수집가’ 는 농도는 밋밋하고 산만한 작품이 되었다.
연쇄살인범의 미완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범인을 전면으로 내세운 시점에서 이 소설의 포인트는 사건의 구성이 아닌 범인의 캐릭터성이 되어버린다. 독자는 사건에 대한 어떤 의문점도 가질 수 없고, 범인의 행동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즉 ‘알프레드’ 라는 범인의 매력, 카리스마등이 중요하단 말이다. 허나 ‘알프레드’ 라는 희대의 살인마의 행동엔 일단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초적인 범죄심리학에 대한 책을 조금 읽어보면 제일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연쇄살인범’ 이란 존재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난해한 존재이나, 사실 그들은 ‘절대적인 진리’ 위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질적인 만큼 타협이라는 것을 모르며, 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모든 기괴한 행동들이 통괄적인 기준위에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위험한 매력’ 을 부여한다. +허나 ‘알프레드’ 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 세상을 조소하고 자긍심 강한 ‘알프레드’ 는 어느순간 이혼을 빌미로 전처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삼류 악당이 되기도 하며, 전처에게 휘둘리며 집에서 얌전히 쫒겨나온 ‘알프레드’ 가 그 다음으로 꼬시는 애인을 상대론 ‘절대자’ 가 된다. 독자는 ‘알프레드’ 의 심리를 들여다 보고 있으나 그 심리에 개연성이 없기에 독자의 감정은 움직이지 않으며, 그만의 ‘절대적인 진리’ 의 부재는 연쇄살인범, 희대의 범죄자로서의 그의 매력에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쉽게 말해 뽀쓰가 전무하단 말이다. 핵심인 범인의 매력감소는 작품전체의 매력감소에 직결된다.
위에서 언급한 불필요한 상세묘사에 대해서도 조금 풀어놔보자. 소설에 있어서 주인공 외 그를 둘러싼 부연요소들은 물론 중요하다. 나는 이러한 부연요소들의 매력적인 묘사가 주인공 및 작품전체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데 어떠한 이의도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완성도 높은 부연요소들을 좋아한다. 허나 ‘아동수집가’ 에는 쓰잘데기 없는 부연요소들이 너무도 많다. 쓰잘데기 없다는 것은 포인트는 짚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욱 치명적인 점은 부연요소의 양적인 측면보다는 질적인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ㅡㅡ)...솔직히 내가 원서를 읽은게 아니기에 ‘이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에게 큰 실례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번역작품의 경우 원작자 보다는 번역가의 능력이 일천하여 원작의 매력의 반의반도 못 살리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번역이라는 작업의 특성상 원작의 손실 및 변질은 피할 수 없으며, 우리나라의 번역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은게 사실이다. ‘아동소설가’ 는 소설의 절반 이상은 부연요소를 서술하기 위해 할당하고 있는데 반면 그 서술의 기법에는 고심의 흔적이 개뿔도 보이지 않는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서술들이 이어지는 페이지는 읽는 이를 피곤하게 만들고 책을 애물단지로 격하시킨다. 이게 제일 심각하다. 물론 부연요소의 조명이 효율적이며 적절하단 이야긴 절대 아니고 일단 데뷔작이니 용서할 수 있단 말이다.
이 문제도 저 문제도 결국은 작가의 역량부족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맴돌던 주옥과 같은 격언, ‘소문난 잔치에 먹을거 없다.’‘싼게 비지떡이다.’...ㅡ_ㅡ);; 일반서점에서 2권을 묶어서 10000원 인터넷에서 9000원에 팔고 있는 시점에서 눈치깠어야 했던거다. 에효...근래에 ‘麗しのシャーロットに捧ぐ’ 란 걸작 정통 미스테리를 읽었던게 이책을 읽는걸 더 힘들게 했던게 아닌가 싶다. 샤롯은 두번이나 정독하고 서평은 쓰지도 않았으니... 뭐, 사실 잘된 작품에 대한 찬양보단 안 된 작품 까는게 훨씬 쓰기 쉽다 ㅡㅡ);;